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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2023 Ghana Rugby League (첫번째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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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 23. 2023

 

대학에 입학하면서 럭비라는 운동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이 거친 운동에 매료되어 거의 이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직/간접적으로 운동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재밌긴 하지만 쓸데없는 (특히 한국에서는) 운동을 대체 왜 했을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도 수없이 빠졌었다. 테니스나 골프, 수영같이 나이들어서도 할 수 있고, 사람 사귀기도 좋고, 폼도 나는 그런 운동을 배워 놓을 수 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아프리카-가나라는 곳에 오고 보니 럭비를 배워 놓은 것이 그렇게 쓸 데 없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비록 크지 않지만 가족같은 럭비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었고, 여러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으며, Rugby League라는 내가 했던 Rugby union과는 약간은 다른 운동도 배우게 되었고, 매년 벌어지는 토너먼트를 알게 되었고, 팀에 합류할 수 있었고, 드디어 지난 주말에 시합까지 뛰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올해가 네번째 시즌이라고 하는데, 아마 동아시아 출신은 내가 최초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레바니즈가 지난시즌에 뛰었던 관계로 아시아 최초 타이틀은 얻지 못했다.) 

 

경기는 일요일 오후 1시, University of Ghana에서 kick-off 예정이었다. 이곳은 토너먼트에 속한 팀들이 주말마다 모여서 훈련하는 공간인데, 그래서 나에게도 익숙한 곳이었다. 한국의 서울대학교라고 할 수 있는 이 대학은 엄청 크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옛 식민지 시절의 흔적을 간직한 듯한 캠퍼스이다. 학교 외곽에 있는 운동장에 도착해 보니 나름 이것저것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많지는 않지만 관람석들과 운영본부, 벤치, 대회를 알리는 배너, 스폰서 사인 등이 설치되어 있었고 전용 골대도 세워져 있었고, 라인작업도 한창 이었다. 심지어 앰뷸런스도 있었다. 물론 일반 학생들이 평소에 쓰는 운동장이기 때문에 뭔가 대회를 개최하는 경기장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아쉬울 수도 있지만, 이정도면 훌륭했다. 가나 럭비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에 환경이 좋을 수가 없었다. 참가하는 선수중에는 가나 대표팀 선수들도 많지만 (사실 거의 모든 대표팀 선수들이 이 대회에 참가하는 것 같다. 우리팀에도 몇몇 있다.) 선수들이 돈을 받고 하는 경기도 아니고 규모도 5개 팀이 참여하는 그런 수준이었기 때문에 무언가 엄청난 것을 기대할 만한 대회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수년 만에 어느정도 갖춰진 대회에 참가한다는 것은 무척 설레는 일이다. 

 

오후 한시에 킥오프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경기는 결국 제때 시작하지 않았다. 예전에 한국에도 코리아타임이 있었듯, 이곳에도 가나 타임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보통 한 두시간 정도 행사가 지연되는 것은 다반사라고 한다. 왠만한 모임, 행사에는 다 적용되는 것 같다. 심지어 장관, 총리 급이 오는 행사에도 시간 맞춰서 시작하는 것이 드물정도라고 하니,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은 꽤나 당황스러울만도 하다. 나도 그중 하나였고, 사실 이번에도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대회에서도 이렇다는 것은 좀 아쉽긴 했다. 하지만 어쩌겠나. 처음에는 이 나라 사람들 너무 게으르고 윤리의식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이 나라의 교통과, 환경, 두시간 이상 걸리는 통근 시간 등을 고려하면 제시간에 시작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언젠가부터 하게 되었다. 아마도 개도국이 겪는 통과 의례같은 일일 것이고, 우리나라도 겪었고, 아마 세계 어느 선진국도 그런 순간이 있었으리라 본다.

 

아무튼  모이기로 했던 12시에는 우리팀에서 대여섯명이 와 있었고, 예정된 kick-off 시간인 오후 1시가 다 되어서야 선수들이 대부분 도착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른 이유로 경기가 제시간에 시작하지 못했는데-그래서 우리팀 에이스가 몸 풀 시간이 있었는데- 이유가 뭔고 하니, 구급차 직원들이 밥을 먹으러 가는 바람에 시작을 못했다고 한다. 아마 선수들도 안오고 하니 제시간에 시작 못할 거라 생각하고 밥먹으러 갔다 온 듯. 웜업 했던 몸이 다시 식어가는 것을 느낄 때 쯤, 시합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14번 등번호를 달고 후보선수로 경기를 시작하였다. 솔직히 이 스포츠의 규칙이 내게는 아직 많이 생소했기 때문에 후보로 시작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rugby league 는 rugby uion과 다르게 교체를 수시로 할 수 있고, 들어왔다가 다시 나가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고 (농구/배구 와 비슷한 시스템), 나는 생각보다 경기에 빠르게 투입되었다. 전반 10분 경에 부상자 교체로 들어간 것 같다. 투입하기 전 트라이 수는 1-1 하나 먼저 먹히고 하나를 찍었다. 우리 팀원 중 하나가 트라이 하는 과정에서 부상당했는데, 그자리를 대신해서 들어갔다. position은 second row(11번). 들어가자마자 스크럼부터 시작했는데, 이어지는 공격에서 처음으로 공을 만졌고, 이어지는 play-the-ball 상황에서 득점이 이루어 지기도 했다. 나는 injury replacement로 투입 되었기 때문에, 부상당했던 우리 선수가 다시 경기장으로 들어오면서 교체되어 나갔다.

 

뒤이어 바로 교체로 다시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우리팀 센터(4번)에 문제가 생겨서 투입 되었다. 사실 백스는 서툴렀지만, 다행인지 내가 들어간 직후에는 수비 상황이 일어나서 좀 여유있게 적응할 수 있었다 (나한텐 수비 포지션 잡는게 훨씬 쉬운 것 같다.). 이번 교체 투입 동안 우리 팀이 트라이를 하나 더 찍을 수 있었고 거기에 살짝이나마 기여해서 기분이 좋았다. 우리팀 포워드가 공을 잡고 50m 정도를 질주 했고, play-the-ball 상황에서 내가 더미 하프로 볼을 플레이 하는 상황에서 상대팀이 볼을 charge해서 패널티. 이어지는 플레이에서 트라이로 성공했다. 

 

공방이 이어졌고, 전반이 끝나갈 무렵에 나는 뇌진탕으로 실려 나가게 되었다. 공격 플레이에서 패스 받아서 상대팀에게 돌진 했는데, 태클 받으면서 땅에 뒷통수를 찧은 것 같다. 머리에 충격이 오고나서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많이 어지러웠고, 일어났을 때 방향감각이 없어졌다. 술먹고 비틀거리는 느낌이랄까? cuncussion은 중대한 부상이기 때문에 바로 교체가 되었는데, 교체 후 바로 전반이 종료되었다. 경기운영본부의 부상자 석에 앉아서 얼음찜질을 하고 좀 쉬었는데, 어지러움과 통증이 꽤나 오래 갔다. 그래도 한 15분 정도 쉬니 괜찮아져서 다시 대기하였다.

 

후반전에도 한 십분 정도 지나고 나서 다시 투입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윙 포지션 (5번) 이었다. 솔직히 윙은 정말 자신이 없었다. 솔직히 우리팀이 커버가 좋은 팀은 아니기 때문에 윙 포지션까지 오면 공간이 너무 넓고, 내가 달리기가 그렇게 빠른 편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윙으로 뛰면서 내 주변에서 트라이를 두번 내줬는데, 두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만 너무 쉽게 트라이를 내준것은 좀 아쉽긴 하다. 차라리 강하게 태클이라도 들어갔어야 했다. 후반 들어서 경기는 계속 밀리는 양상이었지만 간신히 리드를 지켜 승리할 수 있었다. 최종 스코어는 22-16. 트라이 수는 동일 (4-4, 각 4점) 했으나 우리팀은 컨버젼 킥 (트라이 후 보너스로 시도하는 킥)을 세개 성공시킨 반면 상대팀은 하나도 넣지 못해서 승리할 수 있었다. 

 

오늘의 게임은 개인적으로 전반전은 만족스러웠지만 후반전은 그렇지 못했다. 공격 때는 공을 잡을 기회도 없었고, 수비때는 팀의 서포트가 없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좀 쫄기도 했다. 나는 앞으로도 이런식으로 기용될 것 같은데, 솔직히 윙포지션은 좀 걱정되기는 하다. 코치가 시키는대로 해야겠지만 개인적으로 준비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상 역시 아쉬웠지만, 내 신체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틈틈히 하체 단련이라도 좀 더 해야겠다. 그리고 플레이 스타일이 너무 big man 같았던 것 같다. 좀더 패스&커버 플레이에 집중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나의 강점을 좀 살려보자. 

 

팀으로 봤을 때 우리팀이 비록 승리하긴 했지만, 경기력은 아쉬웠다. 공격 때 패스가 유기적으로 돌 때가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약속된 플레이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더 아쉬웠던 것은 디펜스. 선수들이 한곳에 쏠리는 경우가 많았고, 상대팀이 나중에 그렇게 생기는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디펜스 라인을 모든 선수가 함께 펼쳐져서 형성해야 하는데 그렇기 못했기에 빈틈도 많이 생겼다. play-the-ball상황에서 marker들이 수비에 별로 참가하지 않았고, 뒷선의 수비들은 상대가 올때까지 기다렸기 때문에 돌파를 쉽게 허용했다. 윙에서 속도가 붙었기 때문에 통제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운동때 모든 팀원이 나오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에 개선하기가 쉽지 않지만 다음경기까지 한주가 남아있기 때문에 좀더 발전된 플레이를 했으면 한다. 

 

오늘 경기에 참가하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팀에 제대로 된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미안하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화가나기도 했다. 이 나이 먹고 팀에 소속되어 대회에 참가할 수 있어서 너무 감격스럽기도 했다. 대회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뒤에서 일하는 많은 관계자들한테 감사하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운동장에 가서 쥐어 터지다 올 게 뻔한데도 대회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해 준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